승전무(勝戰舞)는 통영지방 교방의 기녀들이 추던 칼춤·북춤·입춤에서 유래한 춤이다. 우선 북춤의 기원은 고려말 이혼(李混, 1252~1312)이 영해(寧海)에서 만들었다고 전해지며, 『고려사(高麗史)』「악지(樂志)」와 『악학궤범(樂學軌範)』(1493) 등에 기록이 전한다. 민간에서 형성된 <무고>는 궁중으로 유입되었으며, 전국 각지에서 <무수(舞袖)>·<고무(鼓舞)>·<고고무(叩鼓舞)> 등의 이름으로 연행되었다. 칼춤은 신라시대 황창랑(黃昌娘)의 고사에 연원을 두며, 1697년(숙종 23) 통영에 교방이 설치된 이후 연행되었다. 통영 교방의 북춤과 칼춤은 교방의 기녀였던 김해근으로부터 이국희-정순남(鄭順南, 1907~1984)으로 전승되었다.
1962년 문화재제도가 시행되면서 ‘승전을 축하한다’는 뜻의 명칭으로 북춤이 1968년에 중요무형유산 제21호로 지정되었으나, “승전무는 북춤과 검무가 함께 연행되어야 한다.”는 정순남의 증언에 따라 원형 복원 논의가 이루어졌다. 이에 1986년 검무가 추가 지정되면서 칼춤과 북춤이 합설(合設)되어 오늘날의 승전무로 재구성되었다.

○ 개요
북춤은 4명의 원무(元舞)가 느린 장단으로 시작해 점차 빠른 장단으로 북을 치며 춤추고, 12명의 협무(挾舞)가 원무를 에워싸 ‘지화자’ 노래를 부르며 입춤을 춘다. 창사(唱詞)는 높이 솟는 기상을 기원하고 충무공(忠武公)의 은덕을 찬양하고 승전의 기쁨을 노래하고 장수의 기상을 기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칼춤은 여덟 명이 상대(相對)하여 군사 진법을 행하듯 일진(一進)·일퇴(一退)·대무를 펼치며, 연풍대(筵風擡) 동작에서는 역동적인 장수의 기개를 드러난다.
○ 절차와 구성
승전무의 전 과정은 칼춤 22분, 북춤 16분으로 총 38분가량 소요된다. 전 과정을 공연하는 것은 긴 시간이 소요되므로 기획 의도에 따라 창사는 두 소절 정도만 부르거나 반복되는 동작은 생략하는 등 각각 10분 내외로 연행하기도 한다.
북춤은 입춤 – 앉은춤 – 북춤 – 창사춤 – 북춤 - 입춤의 순서로 전개된다. 도입부는 입춤에서 원무 4명이 청(靑)·홍(紅)·백(白)·흑(黑)의 의상을 입고 무대 앞으로 한 줄로 나와 서서 인사한 뒤 앉은춤을 춘다. 이후 한삼을 걷어 북채를 들고 일어서 북 앞으로 걸어가 사방(청색-동, 백색-서, 홍색-남, 흑색-북)의 자리에 선다. 이때 협무가 양옆으로 등장한다. 전개부는 북을 중심으로 대무(對舞)·배무(背舞)하며 북을 끼고 오른쪽으로 회무하며 춤춘다. 자기 자리로 돌아오면 도드리장단의 ‘지화자’ 노래를 부르며 창사춤을 춘다. 이어 타령장단으로 전환되면서 속도가 빨라지고 본격적으로 북춤을 춘다. 이때 북을 치는 역동적인 동작과 활달한 한삼의 움직임이 어우러져 신명이 최고조에 달한다. 종결부는 굿거리장단에 맞추어 한 줄로 서서 인사태 동작으로 끝을 맺는다.
<북춤>의 절차와 구성
구분 |
춤사위 |
음악 |
입춤 |
걸음발, 인사태, 평사위 |
염불도드리 |
앉은춤 |
손춤동작 1·2·3 |
염불도드리 |
북춤 |
북어름사위, 어깨울러맨사위, 머리위돌림사위, 돌려치기 |
염불도드리 |
창사춤 |
달아 높이 고이 돋을사 - 어기야 어기 어기여차 - |
창사 |
머리돌림사위, 삼진삼퇴, 머리위돌림사위, 돌려치기 |
타령 |
|
입춤 |
중걸음, 평걸음, 인사태 |
굿거리 |
칼춤은 입춤 – 사위춤 – 앉은춤 - 칼춤(외칼춤·쌍칼춤)의 순서로 전개된다. 도입부의 입춤은 무대 앞으로 한 줄로 나와 인사한 뒤, 중앙에서 두 줄로 나뉘어 서서 대무한다. 전개부의 사위춤과 앉은춤, 칼춤에서 사위춤은 경쾌하면서도 우아한 한삼춤으로 이루어지며, 앉은춤은 한삼을 벗고 앉은 자세에서 여성스러운 손춤으로 이어진다. 이때 어린 기녀가 등장하여 칼을 무용수 앞에 놓아두고 한삼을 거두어 간다. 칼춤은 오른손과 왼손의 순서로 칼을 잡고 일어나서, 본격적인 칼춤을 춘다. 진격태를 통해 서로 팽팽하게 겨루는 대무가 펼쳐지고, 연풍대 동작으로 절정의 춤을 추고 다시 한 줄 대형으로 풀어진다. 종결부는 마무리 춤을 추고 인사태로 춤을 끝맺는다.
<칼춤>의 절차와 구성
구분 |
춤사위 |
음악 |
입춤 |
걸음발, 인사태, 입춤, 쌍오리 |
염불도드리 |
손춤, 멕김사위, 손춤, 평사위 |
염불도드리 |
|
사위춤 |
돌며잦은사위, 모둠겨드랑사위, 잦은겨드랑사위, 돌림사위, 모둠사위, 엇사위, 머릿사위, 좌우돌림사위 |
타령 |
앉은춤 |
손춤, 배김사위, 어깨어름사위, 칼어름사위 |
느린타령 |
칼춤 |
외칼사위, 돌림사위, 잦은사위, 모둠겨드랑사위, 엇사위, 머릿사위 |
빠른타령 |
칼춤 |
머리어름사위, 겨드랑어름사위, 진격태, 연풍대 |
빠른타령 |
입춤 |
인사태 |
염불도드리 |
○ 창사
북춤에서 승전의 의미를 담은 노래를 부른다. 도드리장단에 맞추어 느리게 부르는 “지화자”, 반주 없이 부르는 “달아 높이 고이 돋을사”, “어기야 어기 어기여차”, “우리 우리 충무장군 덕택이요”, “낙지자 오날이야” 등 네 구절의 창사와 타령장단의 ‘겹지화자’ 창사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무반주의 첫 번째 창사 “달아 높이 고이 돋을사”는 『고려사』「악지」와 『악학궤범』의 <무고> 항목에 수록된 「정읍사(井邑詞)」를 노래한 것으로, 북춤이 고려조의 <무고>에 연원을 두어 조선시대를 거쳐 현재까지 전승된 역사성 깊은 춤임을 입증하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 반주 음악
승전무 반주 음악은 조선 후기 통영(삼도수군통제영)에서 발달·전승되어온 민간제례악 계통의 통영 삼현육각(三絃六角)으로, 통영 지역의 음악적 색깔을 띠고 토착화된 형태이다. 악기 편성은 일반 삼현육각과 동일하게 피리 2, 해금 1, 대금 1, 장구 1, 북 1로 이루어진다. 현재 북춤의 반주음악은 〈염불도드리〉·〈타령〉·〈굿거리〉로, 칼춤은 〈염불도드리〉·〈타령〉·〈느린타령〉·〈빠른타령〉·〈염불도드리〉로 순서로 연주된다.
○ 복식ㆍ의물ㆍ무구
승전무에서 북춤의 복식은 원무(元舞)와 협무(挾舞)의 차이가 있다. 원무 4명은 각 방색(方色)에 따라 청색(東)·홍색(南)·백색(西)·흑색(北)의 두루마기를 입고, 홍색 띠를 두르며 아홉 가지 색(백·홍·청·분홍·감·녹·황·연두·자주)의 색동 한삼을 낀다. 두루마기 안에는 색상에 따라 나누어, 홍·백 두루마기 무용수는 남색 치마를, 청·흑 두루마기 무용수는 홍색 치마를 착용하고 모두 흰 저고리를 입는다. 한삼 속에는 붉은 북채를 들며, 머리에는 족두리를 쓰고 금색 용비녀를 꽂는다. 협무는 붉은 치마와 흰 저고리에 옥색 두루마기를 입고, 홍색 띠를 두르며 원무와 동일한 색동 한삼을 착용한다.
무구(舞具)는 북틀 위에 얹은 북에 청색과 홍색의 북치마를 씌워 사용한다.
승전무에서 칼춤의 복식은 붉은 치마와 흰 저고리 위에 검정색 쾌자를 입고, 가슴에는 홍색 띠를 두른다. 한삼은 북춤보다 짧은 아홉 색의 색동 한삼을 착용하며, 머리에는 전립(戰笠)을 쓰고 옥색 비녀를 꽂는다. 무구로는 목이 꺾이며 회전하는 구조의 칼을 사용한다.

○ 역사적 변천
승전무에서 북춤과 칼춤은 20세기 초 통영 교방청 해산 후 권번의 기녀들에 의해 이어졌다. 북춤은 원래 4명의 원무 중심이었으나, 국가무형유산 지정과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참가를 계기로 열두 명의 협무가 추가되어 현재의 형태로 발전하였다. 칼춤 역시 네 명에서 여덟 명으로 확대되었다. 현재 승전무보존회를 중심으로 북춤의 보유자로 한정자(韓貞子, 1942~ ), 검무 보유자인 엄옥자(嚴玉子, 1943~ )에게 전승되었다.
최경자(崔慶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