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무가 언제 성립되었는지 연원을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신문 사료(史料)로 볼 때 1938년 전에 성립된 것으로 가늠된다.
조선일보 1938년 6월 19일자 기사는 조광회(朝光會) 주최로 부민관 대강당에서 열린 〈고전무용대회(古典舞踊大會)〉에 참가한 조선음악무용연구회의 연행 종목과 출연자 명단을 보도하였다. 당시 연행 종목은 〈승무〉ㆍ〈단가무〉ㆍ〈검무〉ㆍ〈한량무〉ㆍ〈신선음악〉ㆍ〈상좌무〉ㆍ〈살풀이춤〉ㆍ〈사자무〉ㆍ태평무ㆍ〈학무>ㆍ〈급제무>ㆍ〈사호락무>이다. 태평무는 이선(이강선)과 장홍심(1914~1994)이 2인무로 왕과 왕비의 역할을 맡아 연행하였다. 같은 해 6월 23일 〈고전무용대회〉에서는 이선과 장홍심이 2인 태평무를 추었다. 1939년 2~3월에 이루어진 남선순업공연(南鮮巡業公演)에서도 태평무가 연행되었으나 출연자에 관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1940년 2월 27일 〈도동기념공연〉에는 강춘자(강선영)와 한영숙이 2인 태평무를 추었다. 강선영의 고증에 의하면 2인 태평무는 터벌림 장단에 왕과 왕비가 함께 춤추다가 왕이 의자에 앉은 이후부터는 왕비가 겉옷을 벗고 춤을 추었다고 한다. 원삼(圓衫)과 한삼(汗衫)을 탈복(脫服)하여 춤추는 태평무의 양식(樣式)이 이 시기부터 전승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태평무는 1인이 추는 형태로 전승되고 있다. 태평무는 대부분의 민속춤과 같이 구전심수(口傳心授)의 전승 방식으로 사사되어 1인 양식이 언제부터 갖추어졌는지 정확한 시기를 알기 어렵다. 다만 1982년 민속무용 학자 정병호(1927~2011)와 신무용가 최현 (1929~2002)이 이동안을 조사하여 문화재관리국이 발행한 무형문화재지정조사보고서(無形文化財指定調査報告書) 제149호 『태평무와 발탈』에 1인 태평무가 기록되어 있어 이때 이미 1인 태평무가 학술적으로 논의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재인 광대 김인호-이동안으로 이어지는 태평무는 관복(冠服)에 사모관대(紗帽冠帶)를 갖추어 입은 원님 1인의 홑춤의 형태이다. 이동안은 이 태평무에 대해서 원님들이 그 해의 풍년(豐年)을 축복하는 뜻에서 관가(官家)나 궁(宮)에서 추어 온 것이라 고증하였다.한편, 한성준류 태평무는 1988년 정병호가 강선영을 조사하여 저술한 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無形文化財調査報告書) 제181호에 기록되었다.

한성준-강선영 계보의 태평무는 왕과 왕비의 복식(服飾)을 입고 추는 1인 춤이다. 강선영류 태평무가 1988년에 국가무형문화재로 처음 지정되었고, 강선영의 타계 후 2019년 11월 이현자(李賢子, 1936~2020), 이명자(李明子, 1942~), 양성옥(梁性玉, 1949~)이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2019년에는 한영숙류 태평무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박재희(朴再姬, 1950~)가 한영숙류 태평무의 최초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현재 세 유파의 태평무는 후학들에 의해 활발히 전승되고 있다.
한성준에서 비롯된 강선영류와 한영숙류 태평무는 왕과 왕비의 복식을 착용한다. 한성준은 일제강점에 따른 시대적 제약에 따라 신라시대 왕의 복식을 착용하였다.
훗날 “나중에 우리나라가 일본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되면 조선의 왕과 왕비 의상을 제대로 갖추어 입고 춤을 춤추라”는 한성준의 유지를 받들어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복식(服飾)을 복원하였다. 강선영류 태평무는 왕비의 예복인 흰색 원삼(圓衫)을 입고 오색한삼을 양손에 끼고 한삼춤을 추다가 탈복(脫服)한 후 치마 위에 당의(唐衣)만을 입고 간결하게 춤을 춘다. 치마는 남색 위에 홍색을 겹쳐 입고, 치마의 하단에는 금박을 박아 장식한다. 녹색의 당의에는 수를 놓고 간혹 노리개를 착용하여 장식하기도 한다. 머리는 궁중의 예식용 어여머리에 떨잠을 꽂아 장식하고, 어여머리 뒤에는 금박을 박아 장식한 댕기를 길게 늘인다. 발에는 버선을 신는다. 왕의 복식은 집무 시에 입던 황색 곤룡포(袞龍袍) 위에 옥대(玉帶)를 착용하고 머리에는 익선관(翼善冠)을 쓰고 흰색 한삼을 손에 끼고 한삼춤을 춘다. 곤룡포와 한삼을 벗은 후에는 흰색 바지저고리를 입고, 그 위에 흰색 도포, 흰색이나 노란색 전복에 술띠를 착용하고 머리에는 상투관을 쓴다. 발에는 버선을 신거나 간혹 혁화(革靴)를 신기도 한다. 한영숙류의 태평무는 욍비의 예복인 원삼을 착용한 강성영류와는 달리 왕비의 평상복인 스란치마에 당의를 갖추어 입는다.한때 춘앵전 복식과 같은 노란 앵삼을 입고 한삼을 착용하고 머리에 족두리를 쓰기도 하였으나 현재는 앵삼과 한삼을 착용하지 않는다. 치마는 홍색 치마에 단을 댄 남색 스란치마를 입고 그 위에 금박을 박아 장식하나 최근에는 두 색의 치마를 안팎으로 착용하기도 한다. 머리는 쪽을 지어 용잠(龍簪)을 하고 족두리를 쓴다. 발에는 버선을 신는다. 이동안(李東安)류 태평무는 왕비의 복식을 갖추고 춤을 추는 강선영류나 한영숙류의 태평무와는 달리 남성의 관복(冠服)인 사모관대(紗帽冠帶)를 착용한다.

흰색 바지저고리 위에 남색 단령[조복(朝服)]을 입고 허리에는 붉은색 각대를 하고 머리에는 사모(紗帽)를 쓴다. 손에는 흰색 한삼에 붉은 끝단을 달아 액을 몰아내는 춤의 주술적 행위를 보완한다. 발에는 목화를 착용한다.
김기화(金起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