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변천
18세기 후반 유득공(柳得恭)이 쓴 『경도잡지(京都雜志)』 중 유가(遊街)에 세악수(細樂手)ㆍ광대ㆍ재인을 대동한다는 데서 소리하는 광대와 악사인 재비, 줄타기나 땅재주를 하는 재인(才人)의 분업을 확인할 수 있다. 같은 시기 송만재(宋晩載)가 지은
「관우희(觀優戱)」를 통해서는 영산회상(靈山會相), 가곡, 12가사, 어룡만연지희, 불토해내기, 포구락, 사자무, 처용무, 유자희(儒者戱), 요요기, 판소리 단가, 판소리, 땅재주, 검무, 줄타기, 솟대타기, 홍패고사 등 광대들의 구체적인 연희 종목을 볼 수 있다.
광대 집단 내부에서 이들 연희 종목에 대한 선호도는 소리, 장단, 곡예 순으로 나타났다. 호남 지역의 세습무계에 전해오는 “성대가 나빠서 ‘소릿광대’가 되기가 어려우면 기악을 배워서 ‘
재비’가 되고, 그것도 재주가 없으면 줄타기를 배워서 ‘줄쟁이’가 되거나 땅재주를 배워서 ‘재주꾼’이 되고 그것도 안 되면 굿판에서 잔심부름하는 ‘방석화랑이’가 된다”라는 말이 이를 입증한다. 그리고 경기 이남의 이들 세습무계 출신 창우 집단 외에 경기 이북의 재인촌, 광대촌 사람들을 광대 집단에 포함하기도 하는데, 이들의 주요 공연 종목은
〈배뱅이굿〉ㆍ〈장대장네굿〉ㆍ〈병신타령〉ㆍ〈개타령〉 등 서도 계통의 재담 소리이다.
조선 시대에는 광대들의 단체인
재인청(才人廳)이 전국 각지에 존재했다. 세습무계 출신의 무부(巫夫)가 중심이 되었던 이 단체는 신청(神廳)ㆍ악사청(樂師廳)ㆍ광대청(廣大廳)ㆍ화랑청(花郞廳) 등으로도 불렸다. 「경기도창재도청안(京畿道唱才都廳案)」ㆍ「경기재인청선생안(京畿才人廳先生案)」ㆍ
「완문등장팔도재인(完文等狀八道才人)」ㆍ「팔도재인등등장(八道才人等等狀)」 등의 문헌을 통해, 조선 시대에 재인청이 존재했으며 이들이 중국 사신 영접과 같은 국가의 공식적인 행사에 동원되었음을 알 수 있다. 각 도마다 도청(都廳)이 있고, 그 우두머리를 대방(大房)이라고 했으며, 대방 밑에 도산주(都山主)를 두 사람 두었다. 한 도를 좌우로 나누어 좌도 도산주와 우도 도산주를 둔 것인데, 산주는 대방을 보좌하며 중요 사항을 의논했다. 계원은 세습무계 출신에 한정하였으며, 무악(巫樂)을 연주하는 화랑, 줄타기나 땅재주와 같은 곡예를 하면서 무악을 연주하는 재인, 가무 예능인이면서 무악을 연주하는 광대를 포함하였다. 실제 「완문등장팔도재인」(1824)과 「팔도재인등등장」(1827)에는 염계달ㆍ송흥록ㆍ고수관 등 판소리 명창들의 이름이 적혀 있기도 하다. 재인청에 속한 광대들은 평소 자신의 거주지에 머물다가
나례(儺禮)나 중국 사신 영접 행사가 있으면 서울로 올라와 산대를 설치하고 연희를 거행했으며, 관아의 각종 행사나 사대부가의 회갑연ㆍ유가(遊街)ㆍ소분(掃墳)ㆍ문희연(聞喜宴) 등에도 참가했다. 인조, 영조 대에 이르러 나례와 사신 영접 행사에서 공식적인 산대희 거행을 중단한 후로는 민간에서의 연행 활동에 더욱 집중하였다.
조선 시대 후기에 이르러서는 남사당패ㆍ사당패ㆍ대광대패ㆍ솟대쟁이패ㆍ초라니패ㆍ풍각쟁이패ㆍ광대패ㆍ걸립패ㆍ중매구ㆍ굿중패 등 다양한 명칭의 유랑예인 집단이 활동했는데, 세습무계 출신의 광대 일부도 그 구성원으로 참여했다. 굿판을 떠나 더 이상 무업을 할 수 없게 된 처지의 광대들이 각종 유랑예인 집단에 편입되어 연희자로서의 활동을 지속한 것이다. 풍물(농악)ㆍ버나(대접돌리기)ㆍ살판(땅재주)ㆍ어름(줄타기)ㆍ덧보기(가면극)ㆍ덜미(꼭두각시놀음) 등이 유랑예인 집단의 주요 공연 종목이었다는 사실은, 이것이 과거 광대들이 연행해 온 가무백희의 전통과 전혀 무관하지 않음을 짐작하게 한다.
광대는 이후 개화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국악의 계승과 발전에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 화성 재인청 출신의 이동안(李東安)은 박춘재(朴春載)에게 전수받은 기예로 국가무형유산 ‘발탈’의 보유자로 인정되었으며, 역시 화성 재인청 출신으로 줄타기와 땅재주에 능했던 김관보가 전수한 줄타기는 국가무형유산 ‘줄타기’, 경기도 무형문화유산 ‘줄타기’ 종목 지정의 바탕이 되었다. 「팔도재인등등장」에 연명했던 송흥록을 비롯해, 박유전ㆍ장재백ㆍ유성준ㆍ장판개ㆍ김세종 등 재인청 출신 광대와 그 후예들이 불렀던 판소리도 국가무형유산 및 시도무형유산 ‘판소리’ 종목을 통해 폭넓게 계승되고 있다. 고수로 활동했던 한성준(韓成俊, 1874~1941) 역시 재인청 출신으로, 전통춤을 집대성하고 전수하여 ‘승무’, ‘태평무’ 등이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되는 데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