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관아와 교방에서 추었던 춤으로, 무용수가 채선을 가운데 두고 둥글게 돌면서 〈이선가〉와 〈어부사〉를 부르며 배 떠나는 정경을 표현한 춤
선악(船樂)은 글자 그대로 뱃놀이를 의미한다. 궁중춤 〈선유락〉의 모체가 된 선악은 명ㆍ청 대립기에 중국 사행(使行)이 바닷길을 통해 이루어졌던 이별의 상황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선악은 문헌마다 다른 이름으로 나타나는데,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의 『열하일기(熱河日記)』「막북행정록」에는 〈배따라기곡[排打羅其曲]〉으로, 이우준(李遇駿, 1801~1867)의 『몽유연행록』에는 〈발도가(發棹歌)〉로, 박사호(朴思浩)의 「연계기정」(『심전고』)에는 〈선악〉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군례를 행하고 〈이선가〉와 〈어부사〉를 부르는 춤의 내용과 절차가 매우 유사하였다. 이들 기록의 저자들은 중국 사절단으로 평안도와 황해도를 지나면서 춤을 감상하였고, 바닷길로 중국 사행을 오갔던 정황에서 춤이 유래되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16~19세기의 여러 기록에 선악이 평안도 평양ㆍ성천ㆍ삼화ㆍ안주ㆍ의주ㆍ선천ㆍ영변ㆍ정주, 황해도 황주, 강원도 원주, 경상도 경주와 진주, 전라도 무주와 남원 등 전국의 지방 감영에서 연행되었으며, 〈이선곡(離船曲)〉ㆍ〈배따라기〉ㆍ〈주무(舟舞)〉ㆍ〈승선무〉 등 다양한 이름이 보인다. 춤 이름은 여러 가지이나 춤 내용이나 형성 배경이 대체로 같아서 동일한 춤으로 인식되고 있다.

○ 개요
<선악>은 해로(海路)로 사행 갈 때의 모습을 연출한 것이기 때문에 대체로 군례를 행하고 무사귀환을 비는 축원의 노래를 부르는 과정으로 이루어졌다. 군대 의례라는 극적인 연출을 위해 군인의 역할은 동기(童妓)와 기녀(妓女)로 단순하게 구성되는데, 진주교방의 선악은 집사ㆍ병방군관(兵房軍官)ㆍ소기ㆍ동기로 각 역할을 분담하기도 하였다. 동기는 소교(小嬌)의 역할을 맡아 호령하거나 배에 올라타 닻을 거두고 돛을 올리는 역할을 주로 하였다. 기녀는 배 바깥에서 끈을 잡고 배를 둥글게 돌며 춤추었다. 궁중의 〈선유락〉은 무용수가 내무와 외무로 나뉘어 배를 겹으로 에워싸는 반면, 지방의 선악은 내무와 외무 구분 없이 큰 원을 그리는 외무 하나로 이루어졌다. 병방군관은 진주교방에서 볼 수 있는 배역이며, 집사와 함께 배에 올라 춤을 추었다.
○ 절차와 구성
선악의 연행 순서는 배 등장→군례→초취→대취타→첫 번째 노래(〈어부사〉ㆍ〈해람곡〉)→이취→삼취→행선→두 번째 노래(〈이선가〉)로 진행되었다. 「막북행정록」의 〈배따라기〉는 첫 번째 노래로 〈어부사(漁父辭)〉를 불렀고 삼취 다음에 발선포(發船砲)한 후 행선하여 ‘닻 들자 배 떠나니’의 〈이선가〉를 불렀다. 황주 교방의 선악도 유사하게 진행되었는데, 첫 번째 노래로는 〈대취타〉에 닻줄 푸는 소리인 〈해람곡〉을 부르는 점이 「막북행정록」의 〈배따라기〉와 달랐다. 평안도 안주 교방의 〈발도가〉는 초취→이취→삼취를 연이어 진행한 후 〈대취타〉를 울린 다음에 행선하여 〈이선곡〉을 불렀다.
진주 교방의 선악은 가장 자세하고 극적인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시작 부분에 병방군관이 군례로 알현하는 상황에서 의식을 잘 거행하지 못한 허물을 부과하였다. 병방군관의 허물을 기록하는 것은 궁중 〈선유락〉이나 다른 지방 선악에서 볼 수 없는 극적인 설정이다. 군례 이후에는 초취→이취→삼취를 연이어 진행하고 〈대취타〉를 울린 다음에 방포(放砲)하고 행선 준비를 한 후 ‘닻 들자 배 떠나니’의 〈이선가〉를 부른다. 대부분 다른 지방에서는 〈이선가〉를 부르면 춤이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진주의 선악은 〈이선가〉 다음에 〈어부사〉 초편을 부르고 행선하며 지화자를 노래하고 다시 배를 다섯 번 돌리고 〈어부사〉 중편을 부른다. 다음으로 행선하여 배가 오른쪽으로 돌고 〈어부사〉 종편을 노래한다. 하선하며 배를 끌고 나가면 집사와 병사가 함께 춤을 추고 〈대취타〉를 연주하다가 병방군관이 하직을 아뢴다. 이처럼 진주 교방의 선악에서는 〈어부사〉를 초편ㆍ중편ㆍ종편으로 나누어 노래하며 배를 도는 동작이 연속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선악의 주요 춤사위는 배를 에워싸고 왼쪽으로 도는 좌선행(左旋行)과 오른쪽으로 도는 우선행(右旋行)이다. 무용수들은 좌선행일 때 왼쪽 손을 펼치고, 우선행일 때 오른쪽 손을 펼친다. 원을 그리며 도는 회무(回舞)는 하나의 원으로 둥글게 도는 경우도 있으나 동서남북의 네 방향에서 둥글게 도는 경우도 있다.
○ 창사
선악에서 부르는 창사는 지역이나 기록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으나 크게 〈이선가〉와 〈어부사〉의 두 종류로 구분된다.
〈이선가〉는 우리말로 〈배따라기〉라고 하였으며, 〈이선요〉ㆍ〈선리요〉ㆍ〈이선악〉 등 여러 이름으로 기록되었다. 이 노래는 행선에서 무용수들이 배를 둘러싸고 축원하는 노래로, 곡조가 처량하고 구슬퍼 사람의 애를 끊게 한다고 평하였다. 〈이선가〉는 바닷길을 통해 중국으로 사행 가면서 등장하였는데, 1636년 중국에 다녀온 김육의 시(『운양집』, 「강북창화집」)에 “달 밝은 밤에 배 타고 석다산을 출발하니/ 처량한 이별노래 돌아올 날 언제이랴(月明舟發石多山/惆悵離歌幾日還)[이것은 이선악사(離船樂詞)를 인용한 것이다. 세간에서 전하기를 조천할 때 지은 것이라고 한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막북행정록」의 행선 때 부르는 〈이선가〉는 추탄 오윤겸이 지었다고도 한다. 「막북행정록」의 〈이선가〉는 다음과 같다.
‘닻 들자 배 떠나니 碇擧兮船離
이제 가면 언제 오리. 此時去兮何時來
만경창파에 가는 듯 돌아오소.’ 萬頃蒼波去似廻
이 노래는 「연계기정」과 『교방가요』에도 조금씩 다르게 나타난다. 「연계기정」에는 “닻 들자 배 떠나니 이제 가면 언제 오리. 만경창파를 소반에 담은 물을 가듯이 돌아오소서.”(碇擧兮船離, 此時去兮何時來, 萬頃蒼波兮 平盤貯水去似廻)라고 하여 ‘소반에 담은 물을 가듯이’라는 표현이 더해졌다. 『교방가요』에는 “닻 들자 배 떠나니 이제 가면 언제 오리. 만경창파에 나는 듯 도라오소. 밤중만 지국총 소리에 애끓는 듯 하여라”라고 하여 지국총 노 젓는 소리에 애가 끓는다는 심정을 한 구 더 추가하였다. 〈이선가〉는 『금릉집』의 「선리요」에 ‘이 곡이 전해진 지 이백 년이나 되었는데, 이 곡을 듣는 사람 마음이 절로 슬퍼지네’라고 곡의 소회를 밝혔듯이 이별의 슬픈 정한이 드러나는 노래이다.
〈어부사〉는 「막북행정록」의 〈배따라기곡〉과 『교방가요』의 〈선악〉 절차에 보인다. 진주교방에서 노래한 〈어부사〉는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1467~1555)가 9장으로 개장한 장가 형식의 〈어부가〉를 제1~3장을 초편, 제4~6장을 중편, 제7~9장을 종편으로 3장씩 나누어 불렀다. 이밖에도 지방의 선악은 여러 노래를 불렀다. 「연계기정」의 선악에서는 초취(初吹) 때 〈대취타〉를 울리며 일제히 닻줄 푸는 소리인 〈해람곡(解纜曲)〉을 불렀다. 또 진주 교방의 선악에서는 행선하여 왼쪽으로 회무할 때 ‘지화자’를 창하였다.
○ 반주 음악
선악의 반주음악은 『교방가요』의 ‘선악(船樂)’에서는 취타와 삼현육각의 두 악대가 연주하였다. 취타 악대는 〈대취타〉를 연주하며, 악기 편성은 태평소ㆍ나발ㆍ나각ㆍ징 등이 유동적으로 편성되었다. 삼현육각 악대는 좌고 한 명, 장구 한 명, 피리 한 명, 대금 한 명, 해금 한 명으로 총 여섯 명이 편성되었다. 평양이나 황주 등의 중국 사신이 오가던 사행로에는 삼현육각에 전악이 편성되었다.
《평안감사향연도》 중 〈부벽루연회도〉 악대에 전악이 포함된 삼현육각 편성을 볼 수 있고, 성천 교방의 풍류를 기록한 〈선루별곡〉에도 “젼후부 뉵각소리 산쳔이 딘동다 …(중략)… 대풍뉴 녕이 나니 뎐악이 쥬관일다. 샤모관 악공들이 차려로 드러오니”라고 하여 전악의 주관으로 삼현육각 편성의 악공들이 사모관대 차림으로 〈대풍류〉를 연주한 것을 알 수 있다.

○ 복식ㆍ의물ㆍ무구
선악은 동기와 무원의 복식이 각각 다르며 같은 역할이더라도 기록에 약간씩 차이를 보인다. 「막북행정록」과 「연계기정」의 기록에는 동기를 소교(小校)로 꾸몄는데, 홍의(紅衣)를 입고, 주립(朱笠; 융복(戎服)을 입을 때에 쓰는 붉은 칠을 한 갓)ㆍ패영(貝纓; 갓의 양쪽에 달아 가슴으로 늘어뜨리는 장식 끈)에 호수(虎鬚; 융복을 입을 때 쓰는 붉은 갓의 네 귀에 꾸밈새로 꽂던 장식)와 백우전(白羽箭; 새의 흰 깃으로 깃을 단 화살. 주로 독수리 깃을 쓴다)을 꽂고, 왼손에는 활시위를 잡고 오른손에는 채찍을 쥐었다. 『몽유연행록』에는 동기가 전립을 쓰고 검은 가죽신을 신고 융복을 입으며 활과 화살 그리고 칼과 채찍을 갖추었다. 진주 교방의 집사는 군복에 화살ㆍ칼ㆍ채찍을 차고, 병방군관은 융복에 칼과 채찍을 갖췄다. 무용수들은 깁 적삼과 채색 비단에 수놓은 치마를 입었다.

채선(彩船)은 선악과 〈선유락〉에서 가장 중요한 무구이다. 채선은 화선(畵船)이라고도 했으며, 지방마다 약간씩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평양 교방의 채선은 받침대가 동물 장식으로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다. 안주 교방의 채선은 길이가 한 장쯤 되고 옆면에는 오색으로 청작(靑雀)과 황룡(黃龍)을 그렸고, 비단으로 닻줄을 늘어뜨리고 조그만 돛대를 세운 형태였다. 진주 교방의 채선은 화려한 채색이나 장식이 없는 소박한 형태였으며 배 아래에 받침대가 있었다. 붉은색 돛에는 “오내일운산수록(敖乃一韻山水綠; 어기여차! 한 소리에 산수는 더욱 푸르러)”라는 글씨가 적혀 있다.
○ 역사적 변천 및 전승
선악은 18세기 말에 〈선유락〉이라는 이름으로 궁중에서 연행되기 시작하였고, 궁중과 지방을 오가던 선상기(選上妓)에 의해 경상도와 전라도, 강원도에 이르기까지 지방으로 더욱 확산되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지방의 선악은 대부분 사라졌다. 2000년 이후 성계옥(成季玉, 1927~2009)이 『교방가요』(1865)를 토대로 진주 선악을 복원하여 진주민속예술보존회에서 재연하고 있다.
김은자(金恩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