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〇 체재 및 규격
- 판종: 필사본
- 형태: 15절(切) 30면(面), 절첩장(折帖裝), 23cm×9cm, 삽도(揷圖), 사주단변(四周單邊), 주사란(朱絲欄), 5행자수부정(五行字數不定)
〇 소장처
국립국악원
〇 편찬 연대 및 편저자 사항
책의 마지막 장에 붉은색 글씨로 ’康熙四十四年靑鷄季秋□□謄‘이라 되어 있고, 책의 마지막 표지에 ‘樂學軌範笏記’라고 써 있는 서명(書名) 양 옆으로 좌측에 붉은 글씨로 ‘숙종 삼십일 년 을유(肅宗 三十一年 乙酉)’라고 적혀 있어 이 책이 1705년에 제작된 자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저자(著者), 발행지(發行地) 및 발행처(發行處)는 모두 미상(未詳)이다.
〇 구성 및 내용
『악학궤범홀기』에는 〈헌선도(獻仙桃)〉, 〈수연장(壽延長)〉, 〈오양선(五羊仙)〉, 〈포구락(抛毬樂)〉, 〈연화대(蓮花臺)〉, 〈금척(金尺)〉, 〈봉래의(鳳來儀)〉, 〈처용정재(處容呈才)〉, 〈아박(牙拍)〉, 〈향발(響鈸)〉, 〈무고(舞鼓)〉의 11종의 정재가 수록되어 있다.
『악학궤범홀기』에 수록된 정재의 명칭은 『악학궤범』 권4와 권5에 수록되어 있는 해당 정재명과 동일하다. 다만 『악학궤범』에는 <처용정재>
가 단독으로 설명되어 있지 않고 〈학연화대처용무합설(鶴蓮花臺處容舞合設)〉에 포함되어 있는데 비해, 홀기에는 〈처용정재〉라는 명칭으로 단독으로 수록되어 있고, 악학궤범홀기 중 유일하게 ‘시용의(時用儀)’가 부기되어 있다.
각 정재에 포함되어 있는 내용은 배반도, 정재의 진행 순서와 이에 따른 춤과 음악, 창사(구호 등 포함), 춤사위명, 반주 악곡명이다.
홀기에 수록되어 있는 배반도의 종류와 내용은 악학궤범과 동일하나,
<봉래의>
에는 취풍형무도가 생략되어 있고,
<처용정재>
와
<향발>
에는 배반도가 없다.
춤과 음악의 구성은 악학궤범과 거의 동일하지만, 서술방식이 다르고 설명이 생략된 부분이 있다. 무용수의 등장과 퇴장, 음악의 시작과 마침에 따른 춤 대형 변화는 ‘○’ 표시로 구분하여 설명했다.
구호·치어·창사는 해당 위치에 쌍행(雙行)의 세주(細註)로 기록해 놓았다. 구호, 치어, 창사의 내용은 악학궤범과 동일하지만, 악학궤범에는 하나로 되어있는 창사를 홀기에서는 반으로 나누고, 명칭도 사(詞)의 제목이 아닌 미전사 미후사로 지칭한 경우도 있다. 특히
<처용정재>
에는 ‘妓唱其歌(여기는 노래를 부른다)’는 표시만 있고. 창사의 가사는 전혀 제시되어 있지 않다. 더불어 〈아박(牙拍)〉, 〈향발(響鈸)〉, 〈무고(舞鼓)〉에도 창사가 보이지 않는다.
춤사위 표시도 되어 있지만, 악학궤범에 비해 많이 축소되어 있고, 춤사위 명칭 맨 뒤의 ‘舞’자는 생략했으며, 춤사위명을 밝혀 놓은 위치가 서로 다르다. 홀기에 나타나 있는 춤사위 명은 광수(廣袖), 농구(弄毬), 대무(對舞), 배무(背舞), 사수(四手), 수보록무(受寶籙舞), 수양(垂楊), 오양(五羊), 입무(入舞), 절화(折花), 무, 퇴수(退手), 파자(破子), 팔수(八手), 협수(挾手), 무롭집피舞, ᄇᆞᆯ바딧舞, 紅鞓도돔이다.
반주음악은
<헌선도>
<오양선>
<봉래의>
<처용정재>
에 한 두곡 정도 표시해 놓았을 뿐, 거의 밝혀놓지 않았다. 홀기에 밝혀놓은 악곡명은
<금잔자(金盞子)>
,
<서자고(瑞鷓鴣)>
,
<보허(步虛)>
,
<치화평(致和平)>
,
<급기(急機),>
<북전 급기(北殿急機)>
,
<정읍(井邑)>
이다. 악학궤범홀기의 배반도와 춤사위명, 반주음악은 악학궤범에 비해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지만, 그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 역사적 변천
국립국악원 소장 『악학궤범홀기』(1705년, 숙종 31)는 현재 전하는 정재무도홀기 중 최고본(最古本)이다. 『악학궤범홀기』에 수록된 궁중정재의 기록방식과 체제는 『악학궤범』의 기록방식을 따르고 있지만 악학궤범과 차이가 있고, 18세기 후반 이후 현전하는 다수의 궁중정재홀기와도 그 기록이 현저하게 달라, 궁중정재홀기 기록에 대한 변천을 확인할 수 있는 직접적인 기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정읍(井邑)>
북전>
급기(急機),>
치화평(致和平)>
보허(步虛)>
서자고(瑞鷓鴣)>
금잔자(金盞子)>
처용정재>
봉래의>
오양선>
헌선도>
처용정재>
향발>
처용정재>
봉래의>
처용정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