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곡은 전반부에 우조의 곡을 부르고 후반부에 계면조의 곡으로 이어 부르는 데, 평롱은 후반부에 ‘소가곡’이라고 하는 ‘농ㆍ낙ㆍ편’ 부분에서 계면조로 부르는 ‘농’ 계열의 기본형이 되는 노래이다.
조선 후기 중형(中型) 시조와 장형(長型) 시조가 등장하면서, 긴 사설을 부르기 위해서 기존의 노래에서 선율이 확대되고 장단에 변화를 준 ‘농(弄)ㆍ낙(樂)ㆍ편(編)’이라는 새로운 유형이 만들어졌다. 이들은 가곡 한바탕을 부를 때 후반부에 불리며, ‘소가곡’이라고도 한다.
소가곡 중 ‘농’ 계열의 노래는 ‘낙’ 계열보다 늦은 시기에 나왔다. ‘농’ 계열의 노래는 19세기 초 금보인 『유예지(遊藝志)』에 〈농엽(弄葉)〉ㆍ〈농악(弄樂)〉 등의 명칭이 처음 보이며, 『강외금보(江外琴譜)』에는 〈계면조농가(啓眠調弄歌)〉, 『소영집성(韶英集成)』에는 〈농〉이라는 명칭으로 수록되어 있으며, 제5장에는 〈우락〉으로 변하는 선율도 함께 기록되어 있다.
가집에서는 『가곡원류(歌曲源流)』(국립국악원본)(1872)에서 〈농가〉라는 명칭을 사용했고, 『협률대성(協律大成)』에서는 〈계롱〉ㆍ『시가곡(詩歌曲)』(권순회본)ㆍ『가보(歌譜)』ㆍ『교방가요(敎坊歌謠)』(1865) 등에서는 평롱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20세기 초의 가집인 『가곡보감(歌曲寶鑑)』(1928)에는 〈농〉과 함께 〈뒤집ᄂᆞᆫ농〉이라는 악곡명이 보여 〈농〉이 제5장에서 변조를 하는 악곡임을 더욱 명확히 알 수 있다.
○ 역사적 변천 과정
평롱의 원래 이름은 〈농〉이고, 흥청거리는 곡태를 일컫는다. ‘평(平)’은 노래를 높지도 낮지도 않은 중간 높이로 부른다는 뜻이다. 본래 〈농〉이라 하였으나, 처음부터 높이 질러 시작하는 〈언롱〉이 파생한 뒤, 이와 구별하기 위해 본래의 〈농〉을 평롱이라 부르게 되었다.
『삼죽금보(三竹琴譜)』(1841)와 『일사금보(一簑琴譜)』, 『서금가곡(西琴歌曲)』, 『학포금보(學圃琴譜)』, 『휘금가곡보(徽琴歌曲譜)』(1893)에는 〈농〉으로, 『희유(羲遺)』, 『협율대성』, 『방산한씨금보(芳山韓氏琴譜)』(1916)에는 〈계롱〉이라는 이름으로 수록되었다. 현행의 명칭과 같은 평롱은 『우헌금보(愚軒琴譜)』, 『현금오음통론(玄琴五音統論)』(1886), 『가곡현금보(歌曲玄琴譜)』(20세기 초) 등에 보인다.
현재 전승되는 남창가곡은 대부분 하규일(河圭一, 1867~1937)을 통해 이어졌으며, 그의 계보를 잇는 이주환(李珠煥, 1909~1972) 등 후대 가객들에 의해 보존ㆍ전승되고 있다. 현재 국가무형유산 가곡 보유자로는 남창 가곡에 김경배, 이동규가 있고, 여창 가곡에 조순자, 김영기가 있다.
전승되는 악곡으로는 남창 평롱에 “월정명(月正明)”, “남훈전(南薰殿)”, “물우흿 사공(沙工)”, “만리장성(萬里長城)엔”, “뿌리깊은 남근”의 다섯 곡이 있고, 여창 평롱에 “북두칠성(北斗七星)”, “각설(却說)이라”, “초당(草堂) 뒤에 와”, “옥(玉) 돝이”, “아자 아자”, “한손에” 등 다섯 곡이 있다.
○ 연행 방식
가곡은 풍류방에서 연주되던 성악곡으로, ‘풍류’란 조선 후기 지식층 음악애호가들이 연주하던 음악 중 합주 음악을 가리키던 말이다. 이들을 ‘율객’ 또는 ‘풍류객’이라 불렀으며, 특히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을 ‘가객(歌客)’이라고도 하였다. 가곡은 ‘시조시(時調詩)’를 노랫말로 삼아 부르는 성악곡으로 관현합주에 맞추어 남창, 여창, 남녀병창으로 부르던 노래이다.
○ 가곡 한바탕에서의 가창 위치
가곡은 한바탕을 이어 부를 때, 우조 바탕으로 시작하여 계면조 바탕으로 이어진다. 평롱은 남창 가곡 24곡을 이어 부를 때 우조 〈언롱(言弄)〉 다음에 17번째 곡으로 부른 후 〈계락(界樂)〉으로 이어진다. 여창 가곡 15곡을 이어 부를 때는 계면조 〈두거(頭擧)〉 다음에 10번째 곡으로 평롱을 부르는데 이때 5장에서 변조하여 〈우락〉으로 이어진다. 남녀가 함께 27곡을 이어 부를 때에는 남창 〈언롱〉 다음에 20번째 곡으로 여창 평롱을 전부 계면조로 부른 후 남창 〈계락〉으로 이어진다.
○ 음악적 특징
㉠ 형식
전체 5장으로 구성되며, 전주인 대여음(大餘音)에 이어 초장ㆍ제2장ㆍ제3장을 부르고, 간주인 중여음(中餘音)에 이어 제4장과 제5장을 마저 부른다. 대여음은 본래 노래가 다 끝난 뒤 연주하는 후주였으나, 현행 가곡에서는 전주로 연주된다.
㉡ 장단
평롱은 가곡의 기본 장단인 16박 장단을 사용하며, 한배는 1분에 50박 빠르기로 노래된다. 가곡의 가사 붙임새는 ‘어단성장(語短聲長)’이라 하여, 실사(實辭)에 해당하는 낱말을 촘촘히 붙이고 조사 등 허사(虛辭)를 길게 끄는 것이 특징이다.
㉢ 늘어난 노랫말의 처리
가곡 한바탕의 전반부 곡들이 45자 내외의 단형 시조를 사용하는 것과 달리, 〈평롱〉을 포함한 ‘농ㆍ낙ㆍ편’ 계열의 후반부 곡들은 글자 수가 늘어난 중형 또는 장형 시조를 노랫말로 쓴다. 늘어난 노랫말을 소화하기 위해 5장 형식의 틀은 유지하되, 제3장이나 제5장의 선율을 확장하는데 이를 ‘각(刻)을 더한다’, ‘각이 늘어났다’고 표현한다. 예를 들어, 남창 평롱 “남훈전”은 제3장에 2각, 제5장에 1각을 더하여 부른다. 평롱은 단형 시조부터 중형 시조, 장형 시조까지 모두 사용되는 노래로, 제3장과 제5장에서 선율을 늘려 노랫말이 늘어난 곡을 부르기 위해 만든 노래임을 알 수 있다.
㉣ 악조
평롱의 악조는 황종(黃:E♭4)ㆍ중려(仲:A♭4)ㆍ임종(林:B♭4)의 3음이 골격을 이루는 황종 계면조이다. 남창 평롱은 음계의 중간 음인 중려(仲:A♭4)로 시작하여 제목인 ‘평(平)’의 뜻을 잘 반영하는 반면, 여창 평롱은 첫 음을 청황종(潢:E♭5)으로 시작하여 언뜻 의미적으로 높게 시작하는 ‘농’ 같으나 이후 선율은 남창 평롱의 골격을 따른다. 즉 남창 평롱의 선율에 여창 특유의 선율이 덧붙여진 곡이라 할 수 있다. 남창에서만 부르는 〈언롱〉은 초장을 높이 질러서 시작하는데 청황종(潢:E♭5)이 아닌 청중려(㳞:A♭5)로 시작하고 있어 여창 평롱보다 4도 위에서 시작하는 곡이다.
평롱은 부르는 방법이 두 가지로, 개별 악곡으로 부르거나 남녀창으로 이어 부를 때에는 전체를 계면조로만 부르며, 여창으로만 이어 부를 때에는 다음 곡인 〈우락〉으로 이어가기 위해, 제5장에서 우조로 변조(變調)하여 부른다.
㉤ 창법
평롱의 음역은 최저음이 탁중려(㑖:A♭3)이고 최고음은 청황종(潢:E♭5)으로 한 옥타브에 완전5도 위까지 약 12도의 간격을 가진다. 실제 소리는 여창의 경우 남창 가곡보다 한 옥타브 높은 음역에서 난다. 가곡 전체로 볼 때는 최저음은 탁태주(㑀:F3)이고 최고음은 청임종(淋:B♭5)이며 이 청임종(淋:B♭5)은 남창 계면조 〈소용〉에 한 번 보이고, 높은 음역을 부르는 남창 우조 〈삼수대엽〉, 우조 〈소용〉, 〈언롱〉, 계면 〈삼수대엽〉에서는 최고음으로 청중려(㳞:A♭5)가 사용된다.
노랫말은 ‘ㅐ’, ‘ㅔ’ 등 중모음을 ‘아이’, ‘어이’ 등 단모음으로 풀어 발음하는데 이것은 가곡 특유의 발음법으로 가곡이 성립한 조선 중기 국어 발음의 잔영으로 보인다.
㉥ 반주 악기
가곡은 거문고ㆍ가야금ㆍ세피리ㆍ대금ㆍ해금ㆍ양금ㆍ단소ㆍ장구 등 관현악 편성의 악기를 1인 1악기만 연주하는 ‘단잽이’로 구성하여 반주한다. 단소나 양금을 추가 편성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생황으로도 반주하였다.
㉦ 가지풍도형용
『가곡원류』에는 첫 서문에 ‘가지풍도형용십오조목(歌之風度形容十五條目)’이라는 항목이 있는데 총 열다섯 곡(초중대엽(初中大葉), 이중대엽(二中大葉), 삼중대엽(三中大葉), 후정화(後庭花), 이후정화(二後庭花), 초수대엽(初數大葉), 이수대엽(二數大葉), 삼수대엽(三數大葉), 소용이(搔聳伊), 편소용이(編搔聳伊), 만횡(蔓橫), 농가(弄歌), 낙시조(樂時調), 편락시조(編樂時調), 편수대엽(編數大葉))에 대해 악곡별로 4자 2구의 한문으로 그 내용이 적혀 있다.
이 풍도형용은 노래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해당 악곡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를 지시하는 것이다. 풍도형용은 첫 서문과 사설들의 첫 시작인 곡명 아래에 적혀 있는데 남창의 곡명 아래에만 적혀 있고, 여창 곡명 아래에는 적혀 있지 않다.
평롱의 풍도형용은 남창 〈농가〉의 곡명 아래와 십오조목 중 ‘농가’ 항목에 아래에 동일한 내용으로 기재되어 있다.
완사청천(浣紗淸川), 축랑번복(逐浪飜覆)
맑은 냇물에 비단을 띄운 듯, 넘실넘실 일렁인다.
해설: 김영운, 『개정증보판 국악개론』, 음악세계, 205쪽.
○ 노랫말
남창 평롱 “월정명”
(초장) 월정명(月正明)// 월정명/ -커늘// - /
(2장) 배를 타고// 추강(秋江)에/ 드니//
(3장) 물 아래/ 하늘이요// 하늘 우/ 에 달이로// 다/
(4장) 아희(兒㝆)// 야/ - //
(5장) 저 달을/ 건져스라// 완월장(翫月長)/-취(醉)// 허리/ -라//
남창 평롱 “남훈전”
(초장) 남훈전(南薰殿)// 순제/ -금(舜帝琴)을// - /
(2장) 하은주(夏殷周)에// 전하오/ -서//
(3장) 진한당(秦漢唐)/ 자패간과(自覇干戈)와// 송제양(宋齊梁)/ 풍우건곤(風雨乾坤)에// 왕풍(王風)이/ 위지(委地)하여// 정성(正聲)/ 이 끊처졌더// 니/
(4장) 동방(東方)// 에 / - //
(5장) 성인(聖人)이/ 나오셔// 탄오현(彈五絃)/ 가남풍(歌南風)을// 이어본/ -가 // 하노/ -라//
(남훈전 내용 해설)
(초장) 남훈전의 순임금이 타시던 오현금을
(2장) 하ㆍ은ㆍ주에 전하시어
(3장) 진ㆍ한ㆍ당 시절 패도를 이루기 위해 난잡히 싸우던 송ㆍ제ㆍ양 시절 전쟁으로 어지러운 세상에 왕도의 풍도가 땅에 떨어져 바른 음악이 끊어졌더니.
(4장) 동방에
(5장) 성인이 태어나시니 오현금을 연주하고 〈남풍가〉를 노래함 이어 볼까 하노라.
해설: 성무경 교주, 『19세기 초반 가곡 가집, 『영언』, 보고사, 2007, 237쪽)
여창 평롱 “북두칠성”
(초장) 북두/ 칠성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분께// - /
(2장) 민망한 발괄// 소지 한 장/ 아뢰나이다//
(3장) 그리든/ 님을 만나// 정옛말쌈/ 채 못하여// 날이 쉬/ 새니 글로 민// 망/
(4장) 밤 중// -만 / - //
(5장) 삼태성/ 차사 놓아// 샛별/ 없이// 하소/ -서//
평롱은 신라 향가와 고려가요의 전통을 잇는 우리 고유의 성악 갈래인 가곡 중 하나로, 전통사회 상류층의 미의식과 문화를 반영한 정가(正歌)에 속하며, 오늘날 국가 및 지방 무형유산이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농〉은 18세기에는 〈만횡〉에 이라고도 하였다. 만횡에서 ‘만(蔓)’의 뜻은 ‘퍼지다’ㆍ‘뻗다’ㆍ‘감다’의 뜻이 있는데, 즉 ‘각’이 계속 늘어나는 모양을 표현한 말로 보이며, ‘횡(橫)’ 또한 ‘섞이다’, ‘뒤엉키다’ 뜻도 있지만 ‘제멋대로 하다’라는 뜻도 있어 〈농〉은 ‘각’을 마음대로 늘려 사용할 수 있는 악곡이라 해석할 수 있다.
신혜선(申惠善),최선아(崔仙兒)